EST · MMXXVI

이야기EP01

한반도의 첫 금메달은 누구 것인가

1936년의 금메달은 일본 것으로 적혔고, 1972년의 금메달은 북한 것이었다. 남한의 첫 금은 1976년에야 나온다.

질문이 셋으로 갈린다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하나뿐인 것처럼 보인다. 1976년 몬트리올, 레슬링의 양정모. 이 아카이브의 국제대회 기록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1948년 런던에서 처음 참가한 뒤 일곱 번째 하계 올림픽, 스물여덟 해 만이었다.

그런데 질문을 조금 바꾸면 답이 달라진다. 한반도에서 나온 첫 올림픽 금메달은 무엇인가.

이 아카이브가 경계를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로 잡은 것은 이 질문 때문이다. 국적으로 거르면 아래 세 기록은 한자리에 놓이지 못한다.

1936년 — 금메달인데 일본 것으로 적혔다

손기정이 베를린에서 마라톤을 우승했다. 같은 경기에서 남승룡이 3위에 올랐다.

sportia 아카이브의 원 기록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JPN | G | Kitei Son      ← 손기정
JPN | B | Shōryū Nan     ← 남승룡

국적이 일본이고, 이름도 일본식 음독이다. 이것은 기록의 오류가 아니다. 그때 공식 기록이 그러했기 때문에, 세계 스포츠 기록을 다루는 아카이브로서는 저렇게 남기는 편이 정확하다.

문제는 그 정확함이 만드는 결과다. 국적으로 선수를 거르는 순간 두 사람은 사라진다. 이 아카이브가 sportia에서 한국 선수 3,541명을 통째로 뽑아 왔을 때, 그 안에 손기정은 없었다. 한글 이름을 맞춰 보다가 안 잡혀서 확인해 보고서야 알았다.

일제강점기에 국제대회에 나가려면 일본 대표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서른다섯 해 동안, 한반도에서 태어난 선수의 모든 국제 기록이 그 조건 아래 있다.

1972년 — 북한이 먼저였다

뮌헨에서 북한이 사격에서 금메달을 땄다.

같은 대회에서 남한이 얻은 것은 유도 은메달 하나였다. 종합 순위는 33위. 1948년 런던에서 동메달 둘로 시작한 뒤 스물네 해가 지났는데도 금메달은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 분단 이후 한반도에서 처음 나온 올림픽 금메달은 북한 것이다. 이 문장은 어느 쪽 아카이브에도 잘 적히지 않는다. 남쪽 기록은 자기 첫 금을 1976년으로 세고, 북쪽 기록은 남쪽을 세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한 단위로 보는 아카이브에서만 이 순서가 보인다.

1976년 — 스물여덟 해 만에

양정모가 몬트리올에서 레슬링 금메달을 땄다. 같은 대회 성적은 금 1 · 은 1 · 동 4, 종합 19위였다.

이때부터 남쪽의 성적이 빠르게 두꺼워진다. 여덟 해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금 6으로 종합 10위, 열두 해 뒤 서울에서 금 12로 종합 4위. 그 곡선의 첫 점이 1976년이다.

세 점이 말하는 것

셋을 나란히 놓으면 한반도 스포츠사의 모양이 드러난다.

연도 무엇 기록상 국적
1936 마라톤 금 일본
1972 사격 금 북한
1976 레슬링 금 대한민국

마흔 해 동안 한반도에서 세 개의 금메달이 나왔는데, 셋 다 다른 깃발 아래 있었다. 한반도 스포츠사는 성적의 역사이기 이전에 소속의 역사다.

이 셋을 한 줄에 세우는 것이 이 아카이브가 하려는 일이다.

[근거]

이 이야기가 기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