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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광복 이후

대회1948년런던

런던 올림픽 첫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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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검색되는 기사 3,492건을 해마다 세었다. 가장 높은 해 1384건.
이 높이는 일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다. 한 사안이 여러 날 되풀이 실리고, 알림 성격의 것은 색인에서 기사가 아니라 광고로 잡힌다. 신문이 얼마나 실었는가로만 읽을 것. 1947년 1,071건과 1948년 1,384건이 나란히 높은데, 앞의 것은 참가를 준비하며 후원권을 팔던 해다. 1949년에 91건으로 떨어진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6-08-16 검색)

독립국 이름으로 처음 나간 하계 올림픽. 역도와 복싱에서 동메달 두 개를 얻었고 종합 33위였다. 이 대회부터 이 아카이브의 국제대회 기록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대회는 7월 29일부터 8월 14일까지 열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8월 15일이다. 그 하루 사이로 지면의 이름이 갈린다 — 8월 14일 국제신문은 「朝鮮은 十一點으로 二十一位」라 적었고, 8월 15일 대한일보는 같은 표를 「韓國은 二十一位」로 실었다. 대회에 나간 이름과 돌아온 이름이 달랐던 셈이다.

태극기는 두 번 올랐다. 8월 11일 김성집이 역도에서, 8월 13일 한수안이 복싱에서 3위에 들었다. 자유신문 8월 15일자 제목이 그것을 그대로 적는다 — 「올림픽, 두 번째 태극기 올리다」.

구기는 둘로 갈렸다. 축구는 1회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이기고 다음 판에서 졌다. 농구는 8위로 마쳤다.

여기서 숫자가 하나 부딪힌다. 이 항목의 요약은 종합 33위라 적는데, 당대 지면은 21위라 적는다. 둘 다 맞다 — 세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신문 제목이 그것을 스스로 밝힌다. 「朝鮮은 十一點으로 二十一位」, 곧 메달 수가 아니라 점수로 매긴 순위다. 이 아카이브의 33위는 메달 수로 매긴 것이고, 동메달 둘만 가진 나라는 그 표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같은 대회의 같은 성적이 어느 표에 올리느냐에 따라 열두 자리를 오간다.

그런데 지면이 가장 크게 쓴 것은 이긴 종목이 아니라 진 종목이었다. 마라톤이다. 강원일보 8월 10일자 2면 머리가 「王國의 面目何處在乎 올림픽마라손에 慘敗」다 — 왕국의 면목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1936년 손기정, 1947년 서윤복으로 이어진 '마라톤 왕국'이라는 자부가 그 한 줄에 깔려 있다. 순위 보고마저 엇갈려서, 조선중앙일보는 8월 21일에 「올림픽마라톤 22位라 怪報告」라는 제목을 내보낸다.

그리고 8월 24일, 조선체육회 평의회가 「올림픽 敗因糾明」을 결의한다. 처음 나간 대회에서 메달 둘을 따고 돌아온 직후다.

경비는 후원권으로 댔다. 8월 1일 여러 신문 1면에 「올림픽後援會假決算書」가 광고로 실리고, 8월 8일에는 「올림픽 後援券抽籤當籤番號發表」가 나간다. 복권을 팔아 선수단을 보낸 것이고, 결산서를 신문 1면에 공고한 것도 그래서다.

중계도 이때 처음이다. 남조선민보는 「런던서울間無難音受話成功」이라 적었고, 국제신문은 그 일을 해낸 기술진의 이름을 나열했다. 경기 결과보다 소리가 닿았다는 사실이 기사가 되던 때다.

[원문]

사료가 적은 것

올림픽, 두 번째 태극기 올리다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자유신문 1948.08.15 · 4면 7단

5-3, 朝鮮軍蹴球에 快勝 올림픽第一回戰에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한성일보 1948.08.04 · 2면 5단

올림픽籠球戰 朝鮮이 八位獲得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부산신문 1948.08.15 · 2면 2단

王國의 面目何處在乎 올림픽마라손에 慘敗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강원일보 1948.08.10 · 2면 1단

올림픽 敗因糾明, 體育會評議會서 决議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신문 1948.08.24 · 2면 6단

연대
1948년
지역
런던
분류
대회
시대
광복 이후
올림픽
[출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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