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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에서 스물넷으로 — 목록이 자라는 방식
조선의 무예 교범은 1598년에 여섯 가지였다가 1759년에 열여덟, 1790년에 스물넷이 된다. 늘어난 항목들의 이름에 그 이유가 적혀 있다.
세 권의 책
조선이 자기 무예를 문자와 그림으로 정리한 것은 세 번이다.
| 책 | 해 | 기예 수 |
|---|---|---|
| 무예제보 | 1598 | 6 |
| 무예신보 | 1759 | 18 |
| 무예도보통지 | 1790 | 24 |
이 아카이브의 조선 구획에서 가장 두꺼운 항목 뭉치가 여기서 나온다. 24기가 그대로 24개 항목이 되기 때문이다. 도해가 남아 있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확인되므로, 이 구획에서 verified: true 비율이 다른 어느 구획보다 높다.
첫 책은 전쟁 중에 나왔다
무예제보는 임진왜란 한복판에 간행되었다. 전쟁을 겪고 나서가 아니라 겪는 동안이다.
그리고 그 책에 실린 여섯 기예 가운데 상당수가 밖에서 온 것이다. 이 성격은 24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이름만 봐도 확인된다.
자기 것을 굳이 '본국'이라고 적어 구별해야 했다면, 나머지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선의 무예 교범은 자기 전통을 정리한 책이라기보다, 전쟁에서 겪은 것을 모아 놓은 책에 가깝다.
스물넷을 갈라 보면
24기를 성격별로 세면 이렇게 나뉜다.
| 수 | |
|---|---|
| 말을 타고 하는 것 | 5 |
| 무기를 쓰지 않는 것 | 1 |
| 겨루기 형태를 가진 것 | 2 |
말 위에서 하는 것이 다섯이다. 마상 기창·마상쌍검·마상월도·마상편곤, 그리고 마상재. 이 목록이 보병 교범이 아니라 군대 전체의 교범이었음을 보여 준다.
무기를 쓰지 않는 것은 하나뿐이다. 권법. 고려에서 사람을 발탁할 만큼 성했던 수박희가 조선 기록에서 점차 줄어든 끝자락에 이 한 항목이 놓인다. 스물넷 가운데 하나라는 비율이, 조선에서 맨손 무예가 차지한 자리의 크기다.
승부를 가리는 형태를 가진 것도 적다. 격구와 마상재 정도인데, 마상재는 겨루기라기보다 보여 주는 기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하나다.
격구가 거기 있는 이유
격구는 고려 왕실의 성대한 경기였다. 그것이 조선을 지나며 규모가 줄어, 마지막에는 무예 교범의 한 항목으로 남는다.
경기였던 것이 훈련 항목이 된 것이다. 이 방향은 이 아카이브의 다른 구획과 반대다. 근대 이후에는 훈련이던 것이 경기가 되는데, 조선에서는 경기이던 것이 훈련으로 정리되었다.
목록이 말하는 것
세 권의 책은 무예의 목록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보여 준다. 여섯에서 스물넷으로, 백구십 해에 걸쳐 네 배가 되었다.
그런데 자란 방향을 보면 겨루기가 아니라 전투 쪽이다. 말을 타는 항목이 늘고, 무기가 다양해지고, 맨손은 하나에 머문다. 조선에서 '대회'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으면 이 교범이 아니라 무과와 편사, 상이 걸린 단오 씨름 쪽으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무예 교범은 조선이 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가장 자세히 남긴 자료이지만, 그 자세함이 스포츠의 자세함은 아니다.
이 이야기가 기댄 것
무예제보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
임진왜란과 무예의 정리
왜검
제독검
본국검
권법
격구 (무예도보통지)
마상재
수박희의 자취
격구의 쇠퇴
- 사료무예제보(武藝諸譜) · 선조 31년 간행, 6기
- 문집청성잡기(靑城雜記)
- 문집홍재전서(弘齋全書)
- 사료무예신보(武藝新譜) · 영조 35년 간행, 18기
- 사료국조보감(國朝寶鑑)
- 사료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정조 14년 간행, 24기 도해
- 사료만기요람(萬機要覽)
- 사료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인용 위치는 항목별로 왕대·연월 기재
- 사료동사록(東槎錄) · 통신사 사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