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고려개경
격구장
擊毬場
격구를 하려면 넓고 평평한 터가 있어야 했고, 왕이 보는 자리와 관중이 설 곳도 필요했다. 이 아카이브에서 경기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처음 나오는 대목이며, 개화기 학교 운동장까지 그 사이가 오백 년 넘게 비어 있다.
[원문]
사료가 적은 것
최우가 이웃집 백여 구(區)를 점탈하여 구장(毬場)을 지으니 동서로 수백 보가 바라다 보이고, 평탄하기가 바둑판과 같았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제15권 · 기축 16년(1229)
누각 남쪽에는 격구장(擊毬場)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무려 4백여 보나 되고 평탄하기가 숫돌 같으며, 주위에 담을 둘러쌓았는데, 수리에 뻗쳤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전집 제24권 · 「최 승제(崔承制)의 대루기(大樓記)」
[출처]
출처
- 사료고려사(高麗史) · 정인지 외 · 1451
- 사료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국역 한국고전번역원 · 인용
- 문집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이규보국역 한국고전번역원 · 인용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