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회
運動會
이 높이는 일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다. 한 사안이 여러 날 되풀이 실리고, 알림 성격의 것은 색인에서 기사가 아니라 광고로 잡힌다. 신문이 얼마나 실었는가로만 읽을 것. 독립신문은 1898년 대운동회 알림 하나를 열다섯 번 실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6-08-16 검색)
학교가 여는 운동회가 근대 스포츠를 대중에게 처음 보인 자리였다. 달리기·줄다리기 같은 종목이 마을 구경거리가 되었고, 연설과 창가가 함께 붙어 체육 행사이자 계몽 행사였다.
이 항목에는 위에 곡선이 하나 붙어 있다. 개화기 구획에서 처음 붙는 수치다. 그동안 이 구획이 '무엇이 이렇게 적혀 있다'까지만 말해 온 것은 셀 것이 없어서였는데,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의 색인이 세어 볼 것을 내주었다.
곡선은 1898년 27건에서 1908년 277건으로 열 배가 된다. 그런데 이 높이를 운동회가 열린 횟수로 읽으면 안 된다. 1898년 독립신문 몫의 상당수가 같은 문안이다. 「외국 어학교 학도들이 대운동회를 터인」이 4월 7일부터 28일까지 아홉 번, 뒤에 「오월 이십일즘」을 붙인 판이 4월 30일부터 5월 17일까지 여섯 번 — 이 아카이브가 눈으로 확인한 것만 열다섯 번이다. 게다가 색인은 이것들을 기사가 아니라 광고로 분류한다. 신문이 운동회를 보도한 것이 아니라 운동회 알림을 실어 준 것이다.
대신 그 반복이 다른 것을 알려 준다. 4월에 나간 알림이 4월 말에 날짜를 '오월 이십일즘'으로 미루고, 정작 열린 것은 그보다 더 뒤다. 독립신문 5월 31일자가 「도라간 토요일 훈련원에셔」로 시작하니 5월 28일 토요일이고, 이틀 뒤 매일신문이 「각 외국 어학교에셔 훈련원으로 대운동 되엿단 말은 임의 긔」라고 받는다. 광고 열다섯 번과 후기 두 건, 그것이 1898년 대운동회에 관해 지면에 남은 자취다.
앞의 두 인용은 이 아카이브가 확인한 가장 이른 운동회 기사다. 1896년 5월 31일 일요일, 관립 소학교 학원들이 훈련원에서 모였다. 5월 30일자가 먼저 알리고 6월 2일자가 받는데, 두 날짜가 30일과 31일로 하루 어긋난다. 1897년에는 4월 11일 일요일 경성학당 학도들이 홍화문 밖 산에서, 4월 27일에는 관공립 소학교 학도들이 훈련원에서 모였다.
이 아카이브가 받아 본 1896~1910년 운동회 기사 389건 가운데 '스포츠'로 분류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회 313건, 문화 69건, 정치 7건이다. 다만 그 분류를 붙인 것은 당대의 신문이 아니라 오늘의 국립중앙도서관이므로, 이것은 개화기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색인을 만든 사람의 판단이다.
사료가 적은 것
이 삼십 일 각쳐 관립 쇼학교 학원들이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6.05.30 · 2면 3단
오월 삼십일일 각 관립 쇼학교 학원들이 훈련원에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6.06.02 · 3면 3단
지나 간 일요 일에 경셩 학당 학도들이 홍화문 밧 산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7.04.15 · 1면 1단
지나 간 이십 칠일에 셔울 관공립 쇼학교 학도들이 훈련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7.04.29 · 1면 1단
외국 어학교 학도들이 대운동회를 터인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8.04.12 · 4면 2단
도라간 토요일 훈련원에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독립신문 1898.05.31 · 3면 2단
대운동회 관광이라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매일신문 1898.05.31 · 1면 1단
각 외국 어학교에셔 훈련원으로 대운동 되엿단 말은 임의 긔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매일신문 1898.06.02 · 1면 4단
출처
- 신문개화기 신문(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 등)인용 위치는 항목별로 지면·연월일 기재
- 사료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기사 제목·발행일·면·단·문종·색인어. 본문은 스캔 이미지라 색인에 없다저작권 만료 · 출처 표시 후 자유 이용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