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1·2·3위 석권
이 높이는 일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다. 한 사안이 여러 날 되풀이 실리고, 알림 성격의 것은 색인에서 기사가 아니라 광고로 잡힌다. 신문이 얼마나 실었는가로만 읽을 것. 1950년 191건은 대부분 4~6월에 몰려 있다. 그 뒤가 비는 것은 관심이 식어서가 아니라 6월 25일에 전쟁이 났기 때문이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6-08-16 검색)
한국 선수 셋이 시상대를 모두 차지했다. 두 달 뒤 전쟁이 났고, 이 성과는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1950년 4월 19일 보스턴에서 함기용이 1위, 송길윤이 2위, 최윤칠이 3위로 들어왔다. 한 나라가 한 대회의 세 자리를 다 가져간 일이라 이튿날 지면이 한 목소리로 「有史 이래 初有」라 적었다. 손기정이 감독으로 따라간 것은 3년 전 서윤복 때와 같다.
레이스가 어떻게 갈렸는지도 지면에 남았다. 연합신문 1면은 「前半은 崔選手리―드 中間點서 咸君新記錄」이라 적었다 — 앞에서 끌던 사람과 이긴 사람이 다르다. 최윤칠은 신경통을 안고 뛰었고, 자유신문은 6월에 그 대목을 「죽음을 각오코 역주! 의사의 기권 권유 일축」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실었다.
귀국 뒤 좌담에서 나온 말 하나가 국도신문 제목에 그대로 올랐다. 「나는 이렇게 싸웠다… 『고추가루』도 一助, 完全團合의 精神을 銘心」. 승인으로 고춧가루가 꼽힌 기록이다.
정치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임병직 외무장관은 「外交官보다 成果大」라 했고, 한성일보 2면 머리는 「이 凱歌를 統一로」라 적었다. 1950년 4월이다.
선수단은 5월 말 도쿄를 거쳐 6월 3일 김포로 돌아왔다. 6월 5일 서울운동장 환영대회에서 이승만이 눈물을 보였다고 서울신문이 적는다. 이후 부산·대구로 순회 환영이 이어지고, 이 아카이브가 받은 마지막 기사는 6월 14일 남선경제신문의 「잘가오 三選手 어제 驛에서 歡送」이다.
열하루 뒤에 전쟁이 났다. 이 항목의 기사 목록이 6월 14일에서 끊기는 것은 자료를 덜 받아서가 아니다. 광복 이후 이 아카이브가 가진 가장 촘촘한 지면이 여기서 끝난다.
덧붙일 것 하나.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우승」 항목에는 1947년 대회의 회차가 지면마다 51회와 52회로 갈린다고 적어 두었는데, 여기서 풀렸다. 자유신문 1950년 6월 2일자가 이 대회를 제54회라 적는다. 1947년에서 세 해 뒤이므로 1947년은 51회다. 세계일보 쪽이 잘못 적은 것이다.
사료가 적은 것
有史 이래 初有 보스턴마라톤 한국 全覇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자유신문 1950.04.21 · 1면 2단
有史初有의 全勝記錄 드높은 이 凱歌를 統一로 江山도 빛나는 榮光의 날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한성일보 1950.04.21 · 2면 1단
뽀스톤마라돈 堂堂制霸! : 外交官보다 成果大, 林外務長官談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연합신문 1950.04.21 · 1면 1단
中間經過 前半은 崔選手리―드 中間點서 咸君新記錄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연합신문 1950.04.21 · 1면 1단
죽음을 각오코 역주! 의사의 기권 권유 일축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자유신문 1950.06.06 · 2면 6단
나는 이렇게 싸웠다, 三選手의 力走譜, 『고추가루』도 一助, 完全團合의 精神을 銘心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국도신문 1950.06.06 · 2면 1단
출처
- 기록보스턴 마라톤 역대 우승 기록1947년 · 1950년 대회
- 사료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기사 제목·발행일·면·단·문종·색인어. 본문은 스캔 이미지라 색인에 없다저작권 만료 · 출처 표시 후 자유 이용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