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우승
徐潤福
이 높이는 일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다. 한 사안이 여러 날 되풀이 실리고, 알림 성격의 것은 색인에서 기사가 아니라 광고로 잡힌다. 신문이 얼마나 실었는가로만 읽을 것. 1947년 442건은 1936년 손기정의 248건보다 많지만, 그해에 나오던 신문 종수가 훨씬 많다는 것도 이 높이에 들어 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2026-08-16 검색)
광복 후 국제 대회에서 거둔 첫 큰 성과. 손기정이 지도자로 동행했다. 11년 전 베를린에서 일본 대표로 뛰던 사람이, 이번에는 태극기를 단 선수를 데리고 갔다.
1936년 베를린과 이 항목 사이는 열한 해다. 그 사이에 지면에 실린 말이 뒤집혔다. 손기정이 이겼을 때 조선신문 1면은 「당당히 빛나는 대일장기」라 적었고 경성일보는 「오오 엄숙한 기미가요」로 끝맺었다. 1947년 4월 22일 대구시보 1면은 「世界舞臺에 感激의 太極旗」로 시작한다. 같은 종목, 같은 거리, 다른 깃발이다.
우승자의 말도 1면에 실렸다. 자유신문 4월 21일자 1면 10단이 「내 승리는 독립의 상징」이다.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 세계 최고 기록이었다.
그 자리에 앞 세대 둘이 함께 있었다. 손기정은 뛰지 않았다 — 대중일보는 「徐選手를 『코취』코자 孫基禎選手는 參加辭絶」이라 적었다. 남승룡은 뛰었고 12착이었다. 1936년에 3위를 한 사람이 열한 해 뒤 같은 종목을 열두 번째로 들어온 것인데, 그해 그가 서른일곱이다.
집안 이야기도 지면에 올랐다. 수산경제신문은 형 서세복의 말을 받아 「逆境의 아우를 爲해 勞働, 徐君에게만 『쌀밥』」이라 실었다. 형이 일해서 동생에게만 쌀밥을 먹였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온 것은 광고였다. 현대일보 1면에는 4월 25일부터 「祝徐潤福君世界마라손大會優勝」이라는 광고가 날마다 줄줄이 붙는다 — 고려다이야상회, 삼화자동차상회, 조선산소공업, 대성목재, 삼화제약, 태백서적공사… 이레 만에 조선마라손보급회가 성명을 냈다. 「名譽로운 『徐選手』이름, 廣告等에 利用치 말라」. 성명을 낸 위원장 권태하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마라톤을 뛴 사람이다.
위 곡선은 이 이름이 신문에 얼마나 실렸는지를 해마다 센 것이다. 1947년 442건으로, 1936년 손기정의 248건보다 많다. 다만 이 둘을 곧바로 견주면 안 된다 — 1936년에 조선어 신문은 손에 꼽았고 1947년에는 수십 종이 나오고 있었다. 곡선의 높이에는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나만이 아니라 그해에 신문이 몇 종이나 나오고 있었나가 함께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어긋난 것 하나. 이 대회의 회차를 지면이 다르게 적는다. 자유신문은 제51회라 하고 세계일보는 제52회라 한다. 세 해 뒤 1950년 대회를 자유신문이 제54회라 적으므로 51회 쪽이 맞다 — 세계일보가 한 회를 더 세었다.
사료가 적은 것
내 승리는 독립의 상징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자유신문 1947.04.21 · 1면 10단
마라손朝鮮 萬丈의 氣焰 徐潤福選手 一着 ; 世界新記錄 2時間25分39秒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한성일보 1947.04.22 · 2면 1단
堂堂히 感激的第一着, 南昇龍選手도 力走햇스나 12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대구시보 1947.04.22 · 1면 1단
徐選手를「코취」코자 孫基禎選手는 參加辭絶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대중일보 1947.04.22 · 2면 4단
逆境의 아우를 爲해 勞働, 徐君에게만 「쌀밥」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수산경제신문 1947.04.22 · 2면 5단
출처
- 기록보스턴 마라톤 역대 우승 기록1947년 · 1950년 대회
- 사료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기사 제목·발행일·면·단·문종·색인어. 본문은 스캔 이미지라 색인에 없다저작권 만료 · 출처 표시 후 자유 이용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