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 · MMXXVI

이야기EP02

91과 80 — 양궁과 사격이 갈리는 지점

사격은 한국이 메달을 가장 많이 쌓은 종목이고, 양궁은 금을 가장 많이 딴 종목이다. 두 숫자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두 숫자

이 아카이브가 sportia에서 옮겨 온 국제대회 기록을 종목별로 세면 맨 위에 사격이 온다.

종목 합계
사격 80 110 97 287
양궁 91 36 25 152

메달 총수는 사격이 양궁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런데 금메달은 양궁이 더 많다.

비율로 보면 차이가 더 뚜렷하다. 사격은 딴 메달 넷 중 하나가 금이고(28%), 양궁은 셋 중 둘에 가깝다(60%). 양궁은 시상대에 서면 대체로 맨 위에 선다.

비율만 놓고 보면 양궁이 첫째는 아니다. 태권도가 116개 중 77개로 66%다. 다만 태권도는 종주국이 종목을 오래 쥐고 있던 사정이 겹치고 대회를 거듭할수록 그 몫이 줄어든다. 양궁이 특별한 것은 비율이 높으면서 절대 수도 가장 많다는 데 있다 — 금 91개는 어느 종목도 근처에 오지 못한다.

이 두 줄이 한국 스포츠에서 가장 자주 되풀이되는 질문 하나로 이어진다. 왜 양궁만 저런가.

결승에서 갈린다

숫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사격은 시상대에 자주 오르지만 결승에서 자주 진다. 양궁은 결승에 오르면 대체로 이긴다.

이 차이는 최근 대회에서 극단으로 나타난다. 2016년 리우에서 양궁은 걸린 네 종목을 모두 가져갔고, 2024년 파리에서는 다섯 종목을 모두 가져갔다. 한 종목의 전 세부 종목을 한 나라가 쓸어 가는 일은 어느 종목에서도 흔치 않다.

같은 파리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은 1976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였는데 금메달은 역대 최다와 같은 13개였다. 그중 다섯이 양궁이다.

자주 나오는 설명 하나

양궁 강세의 이유로 가장 널리 거론되는 것은 대표 선발 방식이다. 지난 대회 성적이나 명성으로 대표를 정하지 않고, 매번 새로 선발전을 치러 그때 가장 잘 쏘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다.

이 설명이 맞다면 숫자와 잘 들어맞는다. 선발전을 통과하는 것이 세계 대회 결승보다 어렵다면, 결승에서 지는 일이 드물어야 한다. 실제로 양궁의 금 비율은 그렇게 나온다.

다만 이 아카이브는 이것을 "정설"로 적지 않는다. 선발 제도와 성적의 인과를 이 기록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 숫자가 보여 주는 것은 결승에서의 강세가 실재한다는 것까지이고, 그 원인은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활은 오래된 것이다

한국 양궁이 국제 무대에 나선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첫 올림픽 금메달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서향순이 딴 것이고, 그것이 한국 여성이 딴 첫 올림픽 금메달이기도 하다. 마흔 해가 안 됐다.

그런데 활 자체는 이 아카이브에서 가장 오래된 층에 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조선에서는 무과의 시험 과목이었으며, 대한제국기에는 궁궐 안에 활터가 섰다.

오늘의 양궁과 그 활쏘기 사이에 직접적인 계보를 잇는 것은 조심스럽다. 도구도 규칙도 다르고, 근대 양궁은 서구에서 들어온 종목이다. 이 아카이브가 둘을 같은 항목으로 묶지 않고 따로 세워 둔 이유다.

다만 한 화면에 나란히 놓고 볼 수는 있다. 1,500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땅에서 같은 동작이 두 번 잘 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과를 주장하지 않고도 기록해 둘 만하다.

[근거]

이 이야기가 기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