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 올림픽 첫 금메달
梁正模
레슬링에서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1948년 첫 참가로부터 28년, 하계 올림픽 일곱 번째 도전 만이었다.
이 항목의 자료원은 앞 구획들과 다르다. 신문이 아니라 대한뉴스다 — 정부가 만들어 극장에서 틀던 주간 뉴스영화다. 국립중앙도서관 신문 아카이브가 1950년대에서 끊기기 때문에, 1970년대는 이쪽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읽는 법도 달라진다. 이 아카이브가 1936년 조선신문과 경성일보를 읽던 방식을 그대로 쓴다 — 누가 만든 화면인지를 먼저 적고, 무엇을 적고 무엇을 안 적었는지로 읽는다.
먼저 이 금메달이 어디에 실렸는지를 본다. 제1096호(1976년 8월 21일)의 꼭지 제목은 「박정희 대통령 동정」이다. 앞머리가 전라북도 수해 순시이고, 그 뒤에 몬트리올 선수단의 청와대 예방과 훈장 수여가 붙는다. 첫 올림픽 금메달이 독립된 꼭지가 아니라 대통령 동정의 한 대목으로 들어가 있다.
그 편의 문장은 이렇다. 「양정모선수 정부수립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공로로 체육훈장 최고장 수여」. '정부수립 이후 처음'이라는 한정이 붙어 있는데, 사실 그대로이기도 하다 — 1936년 손기정은 일본 대표였다. 다만 그 정확한 한정이 무엇을 셈에서 빼는지는 이 아카이브가 「한반도의 첫 금메달은 누구 것인가」에서 따로 다룬 문제다.
두 달 뒤인 10월, 부산에서 열린 제57회 전국체육대회의 성화를 그가 점화한다(제1104호). 두 해 뒤 방콕 아시아경기에서는 페더급을 우승하는데, 그때도 자막은 그를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먼저 부른다(제1217호).
그런데 정작 금메달을 딴 순간의 기록이 비어 있다. 몬트리올 결과를 6분 28초로 정리한 제1094호(8월 7일)가 그 편인데, e영상역사관에 실린 해설 내용이 614자에서 잘려 있다. 잘린 자리가 하필 레슬링이다 — 「자유형 6명이 6체급에 출전, 모두 2회전 진출 -플라이급 전해섭 선수 동메」에서 문장이 끊긴다. 첫 금메달이 나올 바로 그 대목에서 텍스트가 멈춘 것이다. 영상에는 남아 있겠지만 이 아카이브는 영상을 쓰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잘린 채로 인용하고 잘렸다는 사실을 함께 적는다.
마지막으로 아홉 해 뒤의 오기 하나. 제1558호(1985년)가 「72년 몬트리올 금메달 양정모」라고 적는다. 몬트리올은 1976년이고 1972년은 뮌헨이다. 당대 자막의 오기인지 오늘의 색인이 옮기며 생긴 것인지는 영상을 봐야 갈리므로, 그대로 옮기고 어긋난다는 것만 적어 둔다.
사료가 적은 것
양정모선수 정부수립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 공로로 체육훈장 최고장 수여
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제1096호 · 1976-08-21 · 02분 34초
레슬링 : 출전종목 중 가장 좋은 성적 올림. -자유형 6명이 6체급에 출전, 모두 2회전 진출 -플라이급 전해섭 선수 동메
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제1094호 · 1976-08-07 · 06분 28초
개막식 성화 점화, 몬트리올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
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제1104호 · 1976-10-19 · 02분 10초
레슬링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 이번 대회 패더급에서 이라크 물리치고 우승
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제1217호 · 1978-12-28 · 06분 35초
72년 몬트리올 금메달 양정모 선수 이래 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김원기 선수 등 기라성 같은 후진들 뒤를 이음
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 대한뉴스 제1558호 · 1985-09-13 · 01분 52초
출처
- 기록국제올림픽위원회 대회별 공식 기록대회·종목별 시상 기록
- 사료대한뉴스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호수·제작일자·상영시간. 정부가 만든 뉴스영화이며, 인용하는 것은 해설 내용 텍스트다공공누리 표시 확인 후 인용 · 영상 이용은 KTV 나누리 별도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