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희
手搏戲
맨손으로 겨루는 무예. 『고려사』에 무신정권기 인물이 수박으로 이름을 얻고 발탁된 기록이 남아 있어, 무예가 신분 상승의 통로였음을 보여 준다.
수박은 이 아카이브에서 드문 항목이다. 고대 구획의 대부분이 '무엇이 이렇게 적혀 있다'까지만 말하는데, 수박은 누가 그것을 해서 무엇이 되었는지가 함께 적혀 있다.
아래 인용한 『고려사절요』의 문장은 딱 한 걸음만 말한다 — 이의민이 수박을 잘해서 의종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벼슬로 이어졌다는 대목은 이 기사에 없고 『고려사』 열전 쪽에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두 가지를 나눠 둔다. 사료가 직접 적은 것은 '왕이 좋아했다'이고, '그래서 올라갔다'는 다른 기사에서 온 것이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무예가 취미도 의례도 아니고 사람이 왕의 눈에 드는 자리였다는 뜻이다. 이런 기록은 조선에서 다시 나오지 않는다 — 조선의 무과는 시험이라 통로가 제도로 정리되지만, 고려의 이 대목은 왕이 보고 마음에 들어 뽑았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 성함이 오래가지 않는다. 조선 기록에서 수박은 점차 줄어 『무예도보통지』의 권법 한 항목으로 남는다. 스물넷 가운데 하나라는 비율이, 고려에서 사람을 발탁하던 무예가 조선에서 차지한 자리의 크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아카이브가 아직 답하지 못한다.
사료가 적은 것
수박(手搏)을 잘하므로 의종(毅宗)이 사랑하였다. 경인의 변란에 의민이 많이 죽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제12권 · 계사 3년(1173)
5월에 왕이 시전(市廛)에 행차하여 격구를 구경하였다. 상춘정(賞春亭)에 행차하여 수박(手搏)놀이를 구경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제25권 · 임오 3년(1342)
출처
- 사료고려사(高麗史) · 정인지 외 · 1451
- 사료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국역 한국고전번역원 ·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