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1900년대대한제국
체육과 구국운동
국권이 흔들리는 시기에 체육은 '강한 몸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논리로 계몽운동과 묶였다. 체육단체가 잇달아 서고 신문이 체조와 운동을 권한 것이 이 맥락이며, 이 결합은 식민지 시기 내내 이어진다.
[원문]
사료가 적은 것
平安道成川郡聯合大運動會趣旨書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08.10.31 · 3면 6단
西北學生聯合大運動會를 來五月五日(陰三月二十三日)에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07.04.30 · 4면 4단
咸鏡南道文川郡各學校聯合大運動會義捐金及人員氏名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 · 황성신문 1909.09.12 · 3면 4단
[출처]
출처
- 신문개화기 신문(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 등)인용 위치는 항목별로 지면·연월일 기재
- 논문한국 근대 체육사 2차 문헌항목별 서지는 확정 시 교체 — 현재 자리표시
- 사료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국립중앙도서관)기사 제목·발행일·면·단·문종·색인어. 본문은 스캔 이미지라 색인에 없다저작권 만료 · 출처 표시 후 자유 이용 (국립중앙도서관)
[관련]